파 란 꿈


어제밤,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데 재밌는 전화가 왔다.
그전에도 늘 오긴 했지만 별로 신경쓰지 않는 전화였다.

6번째 수신거부 창이 뜨는데, 왠지 한 번 받아볼까라는 생각을 했다.
실은 받지 말았어야 했다. 애초에 그 전화는 내가 받지 않기를 기대하고 걸려온 전화였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했다. 아니, 그건 이야기라고 할 수 없었지만, 어쨌든 이런 저런 말이 오고 갔다.


상대의 요지는 대부분 의미없는 안부인사였는데, '자신은 변했다'는 이야기도 덧붙였다.
나는 사람은 절대 변하지 않는다고 말했지만, 상대가 워낙 완고하게 나오는 탓에, 아 좀 변했나보다라는 생각을 해버리고 말았다. 이런 식의 유유부단함은 내 최대의 단점이다.

배터리가 나갔다. 그 의미없는 통화를 꽤 오래 했었던 것 같다.
배터리를 갈아 끼웠는데, 다시 전화가 왔다. 벨소리가 오래 들리지 않고 끊어지는 걸 보니, 이번엔 정말 내가 받지 않길 바라고 있는 눈치였다. 그래서 받았다.

역시나, 그 전화는 내가 절대 받지 않았으면 하는 의미였다. 같은 번호인데, 다른 사람이었던 것이다.
나는 매우 재밌어졌다. 사람은 절대 변하지 않는다는 내 논리가 여실히 증명되는 순간이었다.


그래서 나에게 적대적으로 나오는 하이톤의 그 다른사람에게, 짓궂게 장난을 쳤다.
웃음이 실실나왔다. 기분 좋은 웃음은 아니었지만 기분이 나쁘지도 않았다.

나는 뿌뜻했다.
예전에 했던 어떤 선택에 대해 장한 짓이었다고 생각하게 되었고,
사람은 절대 변하지 않는다라는 생각을 단단하게 해줬으니, 생각해보니 통화가 아주 의미없지는 않았다.


그 번호는 다시 수신거부창에 저장되었다.
아마 당분간은 조용할테고, 이제 다시 전화가 오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후자를 선택하는 것이 그 상대를 위해 좋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아마 난 다시는 이런 전화를 받지 않을 테지만, 꿈틀대는 장난기가 꾸물꾸물 올라올 수도 있으니, 상대에겐 후자를 선택하는 것이 신상에 좋을 것이다.



세상은 변하고 있다. 똑딱똑딱 미처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도 먼지하나가 날리면서도 세상은 변하고 있다.
사람도 변한다. 피부가 늘어지고, 어떤사람은 코가 높아진다. 하지만, 사람은 가장 변했으면 하는 것은 절대 변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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