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를 좋아하면 내 얼굴에서, 행동에서 오로라가 뿜어져 나오는지 내 주위 사람들은 모두 알았었다.
그땐, 그게 부끄러운 줄도 몰랐다.
그저 감정에 취해 볼이 발그레해지고 헤벌쭉 웃었다.
지금은,
술을 마셔야 발그레해지고, 오로라 같은 건 뿜어대지 않는다.
그때처럼 앞 뒤 생각하지 않고 감정에 솔직하지 못한다. 그때만큼 좋아하는 사람이 없어서가 아니다.
나이를 한살한살 먹을 수록 솔직함에 대한 댓가가 두려워지는 것 뿐이다.
그러니, 그때도 솔직하지 못하고 익명게시판에 이런 글이나 남겼었다.
남자와 여자가 만나 가장 행복할 때는
처음 손을 맞잡아 땀이 찰 때까지 놓지 못하는 그 때. 도 아니고.
서툰 입맞춤에 이를 부딪치는 그 때.도 아니고.
이제 너무 익숙해져서 눈빛만 봐도 상대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아는 그 때.도 아니고.
이제 막,
서로 좋아한다고 느껴서.
고백할까 말까.
밀고 당기기를 하고 있을
바로. 그 때. 이다.
그래도, 이런 말랑말랑한 글을 썼던 걸 보니, 이 때엔 마음이 한 껏 부풀어 있었나 보다.
아, 연애하고 싶구나- 우하하하-
아무도,
세상에 어떤 사람도,
한마디로 규정할 수 없다.
모두들 천가지, 혹은 백만가지 얼굴을 가지고 있는데,
다만, 그 얼굴들이 비슷비슷하기 때문에 대략적으로 그 사람에 대해 규정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 얼굴들은 대하는 사람에 따라, 상황에 따라 늘 변하기 때문에
우리는 그 사람에 대해 놀라기도 하고 실망하기도 한다.
사람에 대해서 선입견을 가지지 않으려고 노력하지만 쉽지 않다.
사람들에 대해 내가 가진 첫인상들은 대부분 얼마가지 못해 깨지고,
그 인상들은 또다시 변하고, 변해서 그 사람을 죽도록 미워하다가도, 다시 좋아하기도 한다.
한 사람을 좋아하다가, 싫어하다가, 또 좋아하다가
결국 내가 내린 결론은,
가만히, 지켜보는 것이다.
함부로 그 사람에 대해 규정하지 않고 그저 바라보는 것이다. (물론, 잘 안된다 -_-')
좋아하는 사람들, 정말 죽어도 싫은 사람들 빼고는 모두 이렇게 보려고 노력한다.
그래서 처음 보는 사람들에게도, 별로 친하지 않은 사람에게도, 조금 싫어하는 사람에게도, 거리낌없이 다가간다.
그 사람들에게 주책없이, 해프게, 친한척하면서 웃는 나를 보고,
누구는 영혼없이 웃는다고 했고,
누구는 가식덩어리라고 했다.
그들 말이 맞기도 하고, 틀리기도 하다.
단지, 적어도 난 사람들에게 진심으로 대하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한 사람이 나쁜 사람인지, 좋은 사람인지 우리는 평생 알지 못한다. 다만, 자신이 '나쁜' 혹은 '좋은'사람으로 규정하는 것 뿐이다.
만약, 정말 이런거라면 말이다. 내 말처럼 함부로 규정지을만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걸 인정한다면.
거만하게 뒷짐지고 앉아서 저 사람은 (나에게)'좋은사람' '나쁘사람'이라고 표딱지 붙이기 전에
가까이 다가가서 말한마디 해보는 건 어떨까. 좀 바보스럽게 보여도, 해벌쭉 웃으면서.
내가 싫다면 싫은 티를 좀 확실하게 내줬으면 좋겠어.
친한척하다가 쪽먹는 건, 정말 굴욕적이거든.
아니면, 내가 싫은 이유나 좀 알았으면 좋겠어.
내가 고칠 수 있으면 고치게.
싫은데, 무슨 이유가 필요하겠냐만은 말이야.
나 고등학교 때 어떤 친구가 있었냐면은
'내가' 생각하기에 좀 싸가지가 없었어.
무엇때문에 그 애한테 화가 나 있었는지 지금은 기억이 나질 않는데,
추측해보건데 아주 사소한 일이었을테고, 아주 유아스러운 질투때문이었을거야.
하교길에 그 애 욕을 막하고 있었는데
바로 근처에서 내 얘길 다 들은거야.
난 정말 정말 당황했어.
그런데 그 다음날 그 애가 나한테 오더니, 자기가 뭐 잘 못한거 있냐고.
미안하다고 그러는거야. 난 더 당황했지.
나도 미안하다고 했어. 왜 그랬는지 나도 잘 모르겠다고.
그리고는 정말 친한 친구가 됐는데,
난 그 애가 정말 멋지다고 생각했어.
나라면, 그런 욕을 듣고는 욕한 사람한테 찾아가서 이야기를 해볼 생각도 하지 못할것이고,
심지어 다른 애들에게 말해서 편가르기를 했을 텐데,
그 애는 달랐거든.
그리고 나한테 단점이 있으니 고쳤으면 좋겠다는 말도 해줬어.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한테만 너무 잘해준다는 거였지. 그 외에 사람들에게는 계산적이라고 그랬어.
나는 그렇다고 생각하지 않고 있었는데, 생각해보니 정말 난 그런 애였어.
그런 행동들이 그 애에게, 다른 사람들에게 보였던 거였지.
난 정말 충격적이었어.
다른 사람들이 모를거라고 생각했었나봐.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그 애를 만나지 못했어. 한 번 쯤 정말 만나고 싶어.
이름도 '아름'이었던 것 같애. 다른 애들 이름은 모조리 잊어버렸는데, 아직도 그 애 이름은 기억나.
나, 아직 그 애가 말해준 그 단점을 고치지 못했어.
오히려 더 심해졌지.
한동안 잊고 있다가 오늘 문득 갑자기 생각난거야.
사실, 이것 말고도 한 백만가지는 더 있겠지. 내 단점말이야.
내가 싫은 이유를 들어도, 난 그때처럼 고치지 못할지도 모르지만,
모르고 있는 것 보다는 알고는 있어야 노력이라고 해보지 않겠어?
고향 사람으로서 착한 마음을 가진 사람이 있으면 반드시 가까이 친하여 서로 마음을 터놓고 지내도록 하는 것이 좋다. 그러나 비록 착하지 못한 사람일지라도 그 사람의 잘못된 행동을 소문내거나 비난하는 짓은 하지 않는 것이 좋다. 만나면 그저 예사롭게 인사나 하고 접대하는 것으로 족하고, 서로 집으로 오고 가지 않으면 그만이다.
전에 알던 사람을 만나면 안부나 묻고 쓸데없는 다른 말을 주고받지 않는 것이 제일이다. 그 사람을 잘 알고 있지 못하면서 쓸데없는 말을 많이 하면 좋은 일이 돌아오지 않게 되기 십상이다.
......
「시경」이라는 책에,
"따사롭고 공손하게 남을 대하는 것은 덕의 기초가 된다."
는 말이 있다.
나를 나쁘게 말하거나 내 하는 일을 방해하는 사람이 있을 때에는 반드시 자신을 돌이켜 왜 그런가를 생각해 보아야 한다. 그래서 만일 내가 정말 뭔가 그런 소리를 들을 행동을 했으면, 스스로 자신을 꾸짖어 그런 허물을 고쳐야 한다. 만약에 내 잘못이 아주 작은데 그가 보태어 말했다면, 그의 말은 지나치기는 하지만, 조금이라도 근거가 있는 말이니, 내 행동을 더욱 아프게 반성할지언정 그 사람을 나쁘게 말해서는 안 될 것이다.
그런데 내가 털끝만큼도 잘못한 것이 없는데 그가 그런 헛된 말을 지어 내어 없는 소리를 했다면, 그 사람은 헛소리를 지어 내는 망령이 든 사람임에 분명하다. 그러니 어찌 그런 사람과 맞서서 옳고 그름을 따질 수가 있겠는가?
헛된 비난이나 소문은 바람이 스쳐 가는 것과 같다. 구름이 하늘에 떠 있다가 없어지는 것과도 같은 일이다. 그러니 그런 것이 나와 무슨 상관이 있겠는가?
나를 비방하는 말이 있으면 내게 정말 그만한 까닭이 있어 나온 말이라면 고쳐야 하고, 그런 일이 없을 때는 그런 허물을 짓지 않으려고 노력하게 되기 때문에 그것은 오히려 나에게 유익한 것이다. 만약에 그런 비난을 들었을 때 화를 내며 시끄럽게 자신을 변명하여 그런 허물이 없는 사람이 되려고 한다면, 그 허물은 더욱 깊어지고 비방을 받는 일이 더욱 무거워지기만 할 것이다.
옛날 어떤 사람이 비방을 그치게 하는 방도를 문중자라는 분에게 물은 일이 있었다. 그랬더니 문중자가 대답하기를,
"스스로 몸을 닦는 길뿐이니라."
라고 대답했다. 그 대답으로는 만족하지 못한 그 사람이 다시 한마디 더 가르침을 달라고 했더니,
"네 행동을 변명하려고 하지 마라."
라고 대답하였다. 이 말은 배우는 사람이면 누구나 마음속에 새겨 둘 만한 일이다.
늘 무언가 하지 않으면 불안했었다.
심지어 티비를 보는 한이 있어도, 청소를 한다거나, 빨래를 갠다거나, 책정리를 해야했었다.
가만히 있는 시간을 견디지 못해서였다.
다른 사람들이 어떤 일을 하고 사는지 누구를 만나는지 신경이 쓰였다.
나도 그들처럼 어떤 일을 하고 누구를 만나야 할 것만 같았다.
그들이 아무것도 하지 않는 나를 보면서 비웃을 것만 같았다.
그러다,
영원히 오지 않을 것 같던, 스물 한 살이 지나고 (난 스무살 이후로 나이를 먹지 않을 줄 알았다.)
암과 '둘둘'을 외치며 '둘둘'에 갔던 스물 두 살도 지나고
지금 생각하면 어설퍼서 웃음만 나오는 스물 세살, 네살이 지나고
진정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는 스물 다섯살이 되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이젠 예전처럼 초조하지도, 불안하지도 않다.
좋아하는 사람들이 생기면서,
가만히 티비만 보고 있어도, 함께여서 좋았다.
함께 여행을 다니고, 술을 마셨다.
실은 그들과 생산적인 대화를 한 적은 거의 없었다.
대부분이 뻘소리였지만, 생산적인 대화가 늘 의미있는 건 아니다.
취미도 생겼다. 혼자 있으면서도 재밌게 할 수 있는 취미를 찾으면서 늘 좋은 사람들을 찾아다녀야 했던 갑갑증이 어느 정도 해소되었다. 사진을 찍는 일은, 내가 늘 접하고 있던 것들이 새롭게 보이기도 하고, 내가 간직하고 싶은 시간을 잡아주기도 한다. 내가 보는 방식대로 세상을 왜곡시기기도 한다. 무엇보다, 혼자 즐길 수 있어 좋다.
무언가 쫓기듯 열심히 일을, 혹은 공부를 하고 있는 사람들은 옆을 쳐다보지 못한다.
늘 자신이 하고 있는 일, 그 일이 펼쳐질 미래만 본다.
가끔 떠나는 여행에 목을 매고, 주말만을 손꼽아 기다리고, 공부도 하지 않으면서 책상에만 앉아있는다.
그들은 바쁘게 무언가를 하고 있지만, '행복'해보이지는 않는다.
그렇다고 내가 해탈의 경지에 오른 신선처럼 유유자적하진 못한다.
조금 불안하기도 하고 초조하기도 하다. 아무것도 정해지지 않은 수험생이란 생활이 좋지만은 않다.
그렇지만 반대로 생각해보면 이 생활만큼 여유로운 때도 없없다. (해야 하는 공부를 안 하고 있으니 실은 시간이 넘쳐나서 문제다.-_-')
먹고 살기 위해 앞만 보고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을 보고 뭐라고 하는 것이 아니다.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위해 땀나게 뛰는 사람들도 멋있다는 생각을 한다.
다만, 내가 말하고 싶은 건, 조금 여유를 갖자는 것이다.
과외비를 30만원씩만 받고 살아도, (부모님께 조금 엉겨붙으면) 여행도 다니고 술도 마실 수 있다.
월급 500만원 받으려고 하기 싫은 출근하고, 야근까지 해야하는 사람들 보다 훨씬 즐겁게 살 수 있다.
월급 받아서 꼬박꼬박 쟁여뒀다가 자식좋은 일 하고 싶지 않다.
내 여건이 되는 만큼만,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살아야 겠다.
먹고 살기 위해선 하기 싫지만 꼭 해야하는 일도 있을테니까 군소리 없이 할 것이다.
내 여유있는 생활의 초점은 하기 싫은 일이 아니라 하고 싶은 일에 있다.
이걸 잊지 않으면 한 결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지 않을까.
여행을 가고 싶어서,
사람들에게 연락을 했었다.
긍정적으로 나오는 사람이 없어서, 약속을 잡지 못했다.
다들, 여행을 갈 여유가 없어 보였다.
여행을 가지 못했다는 것 보다 이제 점점 사람들과 만나는 일이 줄어들 것 같다는 생각에 무척이나 아쉬웠다.
난 더이상 대학생이 아니고, 그들도 이제 대학생이 아니니(또는 이제 그렇게 될 테니) 점점 만나는 것이 힘들 것이다.
물론, 노력여하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말처럼 쉬운일은 아니다. 그런데 웃기게도 이런 생각이 들고 나서 바로 약속이 줄줄 잡혔다. 재밌는 타이밍이다.
그래서 아예 목요일부터 며칠 서울 동생집에 있기로 했다.
목요일 점심땐 강남에서 한나와 은주를 만나기로 했다. 한나는 외국 발령이 났고, 은주는 좋은 기업에 취직을 해서 겹경사다. 교생실습때 만난 좋은 인연들이다. 내가 휴학을 하지 않고 제때 교생실습을 갔다면 만나지 못했을 것이다. 그랬다면 또 다른 사람들을 만났을까? 이들보다 좋치는 않을 것이다.
목요일 저녁엔 태훈오빠 백수탈출 기념으로 사람들을 만난다. 갑자기 귀영이언니가 너무 보고싶어 문자를 보냈더니, 그날 온단다. 사람과 사람의 타이밍이란 정말 재밌다. 언니 말처럼 '만날 때'가 된 것이다.
금요일 점심엔 노량진에 학원수업을 받으러 간다. 그리고 나서 저녁에 학교에 가볼 것이다.
졸업하고 나서 학교를 몇번 가봤는데, 기분이 묘하다. 이방인이 된 기분, 그리움, 조금 복잡하다.
어쨌든, 그날 학교에서 약속이 생기지 않으면 심진씨나 유인언니에게 저녁을 먹자고 전화를 해볼 것이다. 인연이 되면 만날 것이다.
토요일 점심엔 펜탁스포럼 출사에 간다. 출사는 처음이고, 또 모르는 사람들과 가는거라 설렌다. 장소는 선유도 공원이라는데, 여기엔 예전에 한 번 갔었다. 몇 년 전에, 용준오빠와 경훈오빠 병문안을 가면서 들렸던 곳이다. 그때 무슨 생각이었는지 한강다리를 걸어서 건넜는데, 차소리와 매연때문에 숨이 답답했었다. 차들만 없었으면 정말 좋았을 것이다.
토요일 저녁엔 뽀스와 영감님과 '놈놈놈'을 보러 가기로 했다. 영민오빠에게 뽀스와 '놈놈놈'관람을 하러가자고 문자를 보냈더니, 토요일 오후에 가능하다는 문자가 왔다. 청하는 약속을 지나치지 않고 날짜를 바로 잡아서 영감님이 좋다. 언제 한 번 술 한잔 하자는 말에, 다른 사람들은 '그러자'하고 마는데 영감님은 바로 약속을 잡는다. 누군가와 진심으로 사귀고 싶다면 이런 말을 허투로 넘기지 않으면 된다. 물론, 진짜 만나고 싶지 않은데 예의상 하는 말이랑은 구분해야한다.
일요일엔 아침에 과외가 있어서 새벽같이 나와야 한다. 피곤하겠지만, 뭐 좋다. 좋은 사람들을 만나는 일이니 피곤함 쯤이야 예사로 넘길 수 있다.
나는 가끔 아주 오랫동안 만나지 않던 사람에게 연락을 한다. 2년은 보지 못한 중학교 동창이라든지, 몇 번 만나지 않았지만 좋은 기억을 가진 사람이라든지. 그리고 만날 약속을 잡는다. 2년 3년씩 만나지 못했어도, 마치 어제 만났던 것 처럼 편하다. 밥을 먹고, 술도 마시며 서로 사는 얘길하고, 또 만날 기약을 한다.
이렇게 몇년씩 보지 않다가 만나서도 편하려면 우선 내가 편하면 된다. 내가 편하면 상대도 편하게 공통분모를 찾아 이야기를 할 수 있다. 물론 내가 편하게 해도 상대가 불편해 한다면, 인연이 아니니 만나지 않으면 된다. 사람들은 평소에 연락을 하지 않은 사람에게 전화하는 일을 부담스러워한다. 하지만 실은 아무것도 아니다. 만나지 않았던 시간보다 그 사람을 생각하는 마음이 사람과 사람사이에서는 더 중요하다. 그 마음이 통하면 좋은 인연이 될 것이고, 그렇지 않는다면 아쉽지만 인연이 아니다.
그래서 다시 생각해보니, 서로가 바빠 자주 만나지 않더라도, 서로 생각하는 마음이 변하지 않으면 몇년이 지나도 생각나 전화를 하게 되고 기회가 되면 만나게 될 것이다. 그러니 사람에게 집착하지 말고 여유를 가져야 한다. 만약 상대가 먹고 살기 힘들어 누군가를 만날 여력이 되지 않는다고 하면 기다려줘야 한다. 그 상대가 다시 친구를 생각하게 되는 때가 되면 만나게 될 것이다.
같은 논리로, 사랑에 타이밍이 중요하다고 하지만, 그 타이밍이란게 운명처럼 뿅하고 맞는 것이 아니다. 상대에게 다가서려는 마음에, 한 번 더 전화를 하게 되고, 주위를 맴돌다가, 어느날 그 상대가 답한, 바로 그 때인 것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는데 타이밍이 맞아서 서로 사랑하게 되는 것이 아니다.
누군가 나에게 이런 말을 했었다. 서로 각자 일을 열심히 하면서 살다가, 힘든 일이 있거나, 기쁜 일이 있을 때, 또 보고 싶을 때, 만나자고. 서로를 위하는 마음은 서로에게 그 존재만으로도 큰 힘이 된다고. 그랬었다. 그래서 나도, 자주 이런 말을 한다. 자주 만나지는 못하지만, 좋아하는, 좋은 사람들에게 서로 각자 열심히 살다가 어느날 문득 보고싶으면 주저하지 말고 만나자고.
나는 사람들이 좋다. 좋은 사람들과 좋은 인연을 맺고 싶어 늘 노력한다. 지금보다 나이가 어렸을 때는 사람에게 집착도 했었고, 질투도 했었고, 미워도 해서 그 사람만 보면 짜증이 났었는데, 이제는 그러지 않는다. 그 사람들은 나에게 좋은 사람이 아닐 뿐이다. 그 사람들도 누군가에겐 좋은 사람들일 것이다. 나는 나에게 좋은 사람들만 있으면 된다. 그 사람들이야, 나에게 욕을 하든, 싫어하든 상관없다. 또 그 사람들이 어쩌다 나에게 좋은 사람들이 될 수도 있다.
사람 인연은 아무도 모르는 것이니까 말이다.
과외학생이 국어 점수를 55점 받아왔다.
어쩐지, 내가 현관에 들어서는데, 어머님 목소리가 신경질적이었다.
어머님은 "아직 아이를 잘 모르시니까, 이번엔 괜찮아요."라고 했다. 나는 그 뒤에 숨어있는 몇마디의 말을 생각했다.
과외를 하는 내내 눈을 감고 있는 과외학생을 보면서, 안타깝다는 생각을 했다.
꿈이 영화감독이라는 과외학생은 좋아하는 영화이야기를 하면, 눈이 반짝반짝 빛난다.
짧은 시 한 편을 알려주면, 1분도 지나지 않아서 까먹는데, 한 번 본 영화는 몇달이 지났는데도 장면 하나하나 모두 기억하고 있다.
처음 과외를 시작했을 때 어머님의 말씀을 떠올렸다. 과외학생의 형이 공부를 잘해서 치대를 보내려고 하는데, 얘는 공부를 못하니까 치공과를 보내 같이 치과를 시키려고 하신다는 얘기였다. 그러니까 언어영역까지 바라지도 않고 내신만 잘 보게 해달라는 것이 이야기의 요지였다.
그 형도, 과외학생도, 치대나 치공과는 가기 싫어하는데, 어머님의 계획은 과외선생 3명과 함께 착착 진행되고 있다.
도대체 부모-자식은 어떤 사이길래, 부모는 자식이 자신이 바라는대로 살길 원하고, 자식은 그 부모의 바람을 빚처럼 떠안고 살아야하는 것일까. '니 인생을 위해 공부하라고 하는거야'라는 부모님의 말씀을 난 믿을 수 없다.
오늘 아침 집에선 한바탕 전쟁이 일어났다.
이번주에 시험끝난 고딩동생, 이젠 머리통이 다 크다못해 시집갈 나이가 된 대딩동생을 달달달달 깨 볶듯이 달달달달 볶아 결국 모두 집에서 쫒아낸 엄마.
고딩동생은 학교에 가서 자습하긴 커녕 피씨방을 전전할 것이고, 대딩동생은 도서관에 깔짝 앉아있다가 엄마가 집을 비운사이 다시 돌아와 컴퓨터 삼매경.
남은 건, 공부해서 바뀌는 인생이 아니라, 상한 마음들뿐.
자신의 인생은 버리고 자식 인생만 바라보고 사는 부모님도, 그 바람을 이고 사는 나도,
달달달달 볶이는 동생들도,
답.답.해.
-나도 결혼을 하고 자식이 생길까? 지금 마음 같아선, 무섭다. 나도, 엄마랑 똑같이 할 것 같아.
그전에도 늘 오긴 했지만 별로 신경쓰지 않는 전화였다.
6번째 수신거부 창이 뜨는데, 왠지 한 번 받아볼까라는 생각을 했다.
실은 받지 말았어야 했다. 애초에 그 전화는 내가 받지 않기를 기대하고 걸려온 전화였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했다. 아니, 그건 이야기라고 할 수 없었지만, 어쨌든 이런 저런 말이 오고 갔다.
상대의 요지는 대부분 의미없는 안부인사였는데, '자신은 변했다'는 이야기도 덧붙였다.
나는 사람은 절대 변하지 않는다고 말했지만, 상대가 워낙 완고하게 나오는 탓에, 아 좀 변했나보다라는 생각을 해버리고 말았다. 이런 식의 유유부단함은 내 최대의 단점이다.
배터리가 나갔다. 그 의미없는 통화를 꽤 오래 했었던 것 같다.
배터리를 갈아 끼웠는데, 다시 전화가 왔다. 벨소리가 오래 들리지 않고 끊어지는 걸 보니, 이번엔 정말 내가 받지 않길 바라고 있는 눈치였다. 그래서 받았다.
역시나, 그 전화는 내가 절대 받지 않았으면 하는 의미였다. 같은 번호인데, 다른 사람이었던 것이다.
나는 매우 재밌어졌다. 사람은 절대 변하지 않는다는 내 논리가 여실히 증명되는 순간이었다.
그래서 나에게 적대적으로 나오는 하이톤의 그 다른사람에게, 짓궂게 장난을 쳤다.
웃음이 실실나왔다. 기분 좋은 웃음은 아니었지만 기분이 나쁘지도 않았다.
나는 뿌뜻했다.
예전에 했던 어떤 선택에 대해 장한 짓이었다고 생각하게 되었고,
사람은 절대 변하지 않는다라는 생각을 단단하게 해줬으니, 생각해보니 통화가 아주 의미없지는 않았다.
그 번호는 다시 수신거부창에 저장되었다.
아마 당분간은 조용할테고, 이제 다시 전화가 오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후자를 선택하는 것이 그 상대를 위해 좋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아마 난 다시는 이런 전화를 받지 않을 테지만, 꿈틀대는 장난기가 꾸물꾸물 올라올 수도 있으니, 상대에겐 후자를 선택하는 것이 신상에 좋을 것이다.
세상은 변하고 있다. 똑딱똑딱 미처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도 먼지하나가 날리면서도 세상은 변하고 있다.
사람도 변한다. 피부가 늘어지고, 어떤사람은 코가 높아진다. 하지만, 사람은 가장 변했으면 하는 것은 절대 변하지 않는다.
요 며칠 내내 내 사랑 하우스를 닳도록 봤다.
피아노 치는 하우스는 정말 매력적인데, 특히 눈을 치켜떠서 이마에 주름이 한가득일 때가 가장 멋있다.
수염을 깍지 않아서 더수룩한 하우스가 영감님을 닮았다는 생각도 했다. 나는 아직 영감님'환상'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일까.
하우스의 변하지 않는 신념 중 하나는 '모든 사람은 거짓말을 한다는 것이다.'
나도 늘 거짓말을 한다. 어떤 상황에서의 거짓말은 꼭 필요하고, 나쁘지 않지만 그것이 반복되면서 불필요한 거짓말을 하게 되고, 신뢰마저 잃을 수 있다. 특히 나처럼 머리가 나쁜 사람은 거짓말을 계획적으로 하지 않으면 금방 들통나 버린다.
거짓말은 왜 하게 되는 것일까. 그냥 솔직하게 이야기할 수는 없을까. '널 보고싶다고.'
내가 만약 1학년으로 돌아간다면 어떨까.라는 생각을 해봤다. 일초의 시간도 낭비하지 않고 열심히 놀고, 열심히 공부할 텐데. 정말? 그렇다. 나는 절대 그러지 못할 것이다. 더군다나 시간을 일초도 되돌릴 수 없는 나약한 인간인 나에게 이런 생각은 정말 비 생산적이다. 그래서 띵까띵까 놀고, 욕도 좀 먹고, 술은 많이 먹고, 틈만 나면 놀러나간 과거의 '내'가 지금의 '나'를 만들었으니 후회하지 말자는 생산적인 생각을 했다. 지금의 '나'는 나쁘지 않다. 이정도면 긍정적이다.
누군가 외치는 '완전체'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생각하면 할 수록 완벽하다. 나도, 완전체를 지향해야 겠다. 그것은 분명 자유로운 삶의 필수조건이다.
몇년 돈을 모아서 6개월 배낭여행을 가야겠다고 마음먹었다. 1년은 너무 힘들고, 6개월이 적당하다. 내가 하려는 일은 여느 직장인의 피터지는 라이프스타일이 아니기 때문에 마음만 먹으면 충분히 가능한데, 난 이미 마음을 먹었으니 출발하는 일만 남았다.
운동을 열심히 했더니 몸이 개운하다. '나'는 솔직하지 못하지만 '몸'은 정직하다.
3번인가 4번만에 한자 자격증을 땄다. 그 3번인가 4번인가 중에 두번은 아예 시험도 보지 않았고, 한 번은 벼락치기 했다가 떨어졌다. 이번엔 살짝만 벼락치기 였는데, 고득점으로 합격이다. 그동안 내공이 쌓인 것이다. 다행히 난 바보는 아니구나. ... 이 정도면, 바보인가.
내가 믿는 만병통치약이 하나 있는데 그것은 바로 시간이다. 시간은 모든 것을 변화시킨다. 물론 가장 변했으면 하는 건 늘 그대로이지만, 어쨌든 시간이 간다는 것, 그래서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어찌보면 굉장한 일이다! 난 나이를 먹으면서 좋은 친구들을 얻었고, 내가 어떻게 살아가야하는지 (남들보단 느리지만) 천천히 깨달아가고 있고, 내가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알아가고 있다. 과거의 상처는 점점 흐릿해지고, 기분 좋은 느낌만 '남길' 것이다. 시간이 아주 오래 지나고, 내가 죽을 날이 오면, 구름 위에 '태양'님한테 가서 '이 세상은 아름다웠노라'고 이야기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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