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나"
"오- 귀국했어? 살아있었네"
...
"그럼 대학로에서 1시간 뒤에 보자"
약속을 잡을까 말까, 만나자고 하면 싫어하지 않을까, 거절하면 어쩌지,라고 고민하는 만남보다
문득 전화해서, 한 잔 하자고 하면, 그날 저녁이고 바로 마주 앉는 편안한 만남이, 좋은 법이다.
고향 사람으로서 착한 마음을 가진 사람이 있으면 반드시 가까이 친하여 서로 마음을 터놓고 지내도록 하는 것이 좋다. 그러나 비록 착하지 못한 사람일지라도 그 사람의 잘못된 행동을 소문내거나 비난하는 짓은 하지 않는 것이 좋다. 만나면 그저 예사롭게 인사나 하고 접대하는 것으로 족하고, 서로 집으로 오고 가지 않으면 그만이다.
전에 알던 사람을 만나면 안부나 묻고 쓸데없는 다른 말을 주고받지 않는 것이 제일이다. 그 사람을 잘 알고 있지 못하면서 쓸데없는 말을 많이 하면 좋은 일이 돌아오지 않게 되기 십상이다.
......
「시경」이라는 책에,
"따사롭고 공손하게 남을 대하는 것은 덕의 기초가 된다."
는 말이 있다.
나를 나쁘게 말하거나 내 하는 일을 방해하는 사람이 있을 때에는 반드시 자신을 돌이켜 왜 그런가를 생각해 보아야 한다. 그래서 만일 내가 정말 뭔가 그런 소리를 들을 행동을 했으면, 스스로 자신을 꾸짖어 그런 허물을 고쳐야 한다. 만약에 내 잘못이 아주 작은데 그가 보태어 말했다면, 그의 말은 지나치기는 하지만, 조금이라도 근거가 있는 말이니, 내 행동을 더욱 아프게 반성할지언정 그 사람을 나쁘게 말해서는 안 될 것이다.
그런데 내가 털끝만큼도 잘못한 것이 없는데 그가 그런 헛된 말을 지어 내어 없는 소리를 했다면, 그 사람은 헛소리를 지어 내는 망령이 든 사람임에 분명하다. 그러니 어찌 그런 사람과 맞서서 옳고 그름을 따질 수가 있겠는가?
헛된 비난이나 소문은 바람이 스쳐 가는 것과 같다. 구름이 하늘에 떠 있다가 없어지는 것과도 같은 일이다. 그러니 그런 것이 나와 무슨 상관이 있겠는가?
나를 비방하는 말이 있으면 내게 정말 그만한 까닭이 있어 나온 말이라면 고쳐야 하고, 그런 일이 없을 때는 그런 허물을 짓지 않으려고 노력하게 되기 때문에 그것은 오히려 나에게 유익한 것이다. 만약에 그런 비난을 들었을 때 화를 내며 시끄럽게 자신을 변명하여 그런 허물이 없는 사람이 되려고 한다면, 그 허물은 더욱 깊어지고 비방을 받는 일이 더욱 무거워지기만 할 것이다.
옛날 어떤 사람이 비방을 그치게 하는 방도를 문중자라는 분에게 물은 일이 있었다. 그랬더니 문중자가 대답하기를,
"스스로 몸을 닦는 길뿐이니라."
라고 대답했다. 그 대답으로는 만족하지 못한 그 사람이 다시 한마디 더 가르침을 달라고 했더니,
"네 행동을 변명하려고 하지 마라."
라고 대답하였다. 이 말은 배우는 사람이면 누구나 마음속에 새겨 둘 만한 일이다.
늘 무언가 하지 않으면 불안했었다.
심지어 티비를 보는 한이 있어도, 청소를 한다거나, 빨래를 갠다거나, 책정리를 해야했었다.
가만히 있는 시간을 견디지 못해서였다.
다른 사람들이 어떤 일을 하고 사는지 누구를 만나는지 신경이 쓰였다.
나도 그들처럼 어떤 일을 하고 누구를 만나야 할 것만 같았다.
그들이 아무것도 하지 않는 나를 보면서 비웃을 것만 같았다.
그러다,
영원히 오지 않을 것 같던, 스물 한 살이 지나고 (난 스무살 이후로 나이를 먹지 않을 줄 알았다.)
암과 '둘둘'을 외치며 '둘둘'에 갔던 스물 두 살도 지나고
지금 생각하면 어설퍼서 웃음만 나오는 스물 세살, 네살이 지나고
진정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는 스물 다섯살이 되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이젠 예전처럼 초조하지도, 불안하지도 않다.
좋아하는 사람들이 생기면서,
가만히 티비만 보고 있어도, 함께여서 좋았다.
함께 여행을 다니고, 술을 마셨다.
실은 그들과 생산적인 대화를 한 적은 거의 없었다.
대부분이 뻘소리였지만, 생산적인 대화가 늘 의미있는 건 아니다.
취미도 생겼다. 혼자 있으면서도 재밌게 할 수 있는 취미를 찾으면서 늘 좋은 사람들을 찾아다녀야 했던 갑갑증이 어느 정도 해소되었다. 사진을 찍는 일은, 내가 늘 접하고 있던 것들이 새롭게 보이기도 하고, 내가 간직하고 싶은 시간을 잡아주기도 한다. 내가 보는 방식대로 세상을 왜곡시기기도 한다. 무엇보다, 혼자 즐길 수 있어 좋다.
무언가 쫓기듯 열심히 일을, 혹은 공부를 하고 있는 사람들은 옆을 쳐다보지 못한다.
늘 자신이 하고 있는 일, 그 일이 펼쳐질 미래만 본다.
가끔 떠나는 여행에 목을 매고, 주말만을 손꼽아 기다리고, 공부도 하지 않으면서 책상에만 앉아있는다.
그들은 바쁘게 무언가를 하고 있지만, '행복'해보이지는 않는다.
그렇다고 내가 해탈의 경지에 오른 신선처럼 유유자적하진 못한다.
조금 불안하기도 하고 초조하기도 하다. 아무것도 정해지지 않은 수험생이란 생활이 좋지만은 않다.
그렇지만 반대로 생각해보면 이 생활만큼 여유로운 때도 없없다. (해야 하는 공부를 안 하고 있으니 실은 시간이 넘쳐나서 문제다.-_-')
먹고 살기 위해 앞만 보고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을 보고 뭐라고 하는 것이 아니다.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위해 땀나게 뛰는 사람들도 멋있다는 생각을 한다.
다만, 내가 말하고 싶은 건, 조금 여유를 갖자는 것이다.
과외비를 30만원씩만 받고 살아도, (부모님께 조금 엉겨붙으면) 여행도 다니고 술도 마실 수 있다.
월급 500만원 받으려고 하기 싫은 출근하고, 야근까지 해야하는 사람들 보다 훨씬 즐겁게 살 수 있다.
월급 받아서 꼬박꼬박 쟁여뒀다가 자식좋은 일 하고 싶지 않다.
내 여건이 되는 만큼만,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살아야 겠다.
먹고 살기 위해선 하기 싫지만 꼭 해야하는 일도 있을테니까 군소리 없이 할 것이다.
내 여유있는 생활의 초점은 하기 싫은 일이 아니라 하고 싶은 일에 있다.
이걸 잊지 않으면 한 결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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